일반 중국 선교 열 여섯 번째 이야기(다 기록할 수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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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 중에 훨씬 더 이성적인 것을 고르라면 당연히 글을 골라야 할 것이다. ‘글’은 생각할 시간이 존재하고, 현장을 벗어날 수 있어서 현장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역동에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은 사건(행위)이 일어나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음으로 인해, 그 장소, 그 순간에 모든 행위가 이루어지게 되어, 생각하거나 되돌아보거나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글’이 ‘말’보다 훨씬 이성적일 수 있으며, 담담하게 그 행위(글 쓰는 일)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원칙이 모든 일에 반드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말’은 그 시간과 공간이 지나가 버리면(특별히 녹음을 하거나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지만, ‘글’(특히 당시의 감정과 상황을 묘사한 메모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기에, 사라져 버릴 격정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재생할 수 있으며, 거기에 지금의 느낌까지 곁들여 재생산할 수가 있다. 이러한 때에는 오히려 ‘말’보다 ‘글’이 어느 면에서는 더 감성적일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전개할 마지막 집회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실은 그때 그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날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과 한참이나 떨어진 지금과 이곳에서 글로써 당시의 일을 정리하자니, 당시의 감동뿐 아니라, 새로운 감동에 일어나서 글의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마음은 저만큼 앞서고 있는데 당장 무엇을 써내려가야 할 지 모르겠다. 당시의 여러 가지 감동뿐 아니라, 지금의 감사함과 감동이 섞여 있어서 도대체 무엇을 먼저 써 내려가야 할지 막막해 진다. 시간 순서대로 써야할지, 아님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간단한 보고로 시작해야 할지... 고민 끝에 당시의 느낌을 여과 없이 그냥 서술하는 것으로 중국의 마지막 집회의 모습을 전해보고자 한다.
집회가 끝난 후 짧은 후기록에 적은, 그날의 두서없는 감상의 글들이다.
‘ 보인 것은 하나님이셨고, 나를 감추어 주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
‘ 드린 것은 나였고 버린 것 또한 나였습니다. ’
‘ 오늘은 천국의 모습을 본 것 같습니다. ’
‘ 찬양을 하며 내던 낱낱의 소리가, 주를 향한 인생의 의미를 담아낸 듯합니다. ’
‘ 소리, 몸짓, 호흡, 눈빛, 표정, 눈물 모두가 모두 하나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
‘ 추석날에 대박입니다. 나를 사용해 주신 하나님, 나를 쓸 만한 도구로 인정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
‘ 마음을 드립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
‘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사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마음 드리기를 원합니다. ’
‘ 내 삶을, 내 마음을 드립니다. ’
‘ 주님 뜻대로, 주님 들려주시는 음성대로 살게 하시고, 하나님 인도하심을 느끼며 살게 해 주세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기고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마음을 드립니다. ’
‘ 자유... 여러 가지 장애를 장애처럼 느끼지 못하는 참 자유. ’
‘ 속박이 있으나 속박 받지 않는 자유. ’
‘ 어렵고 힘듦이 있으나 힘듦이 없는 자유. ’
‘ 하나님께 매여 있으나 세상으로부터는 자유로운, 얽매인 자유.’
‘ 그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무위)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자유를 위협하고 없앨 수 있는 모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유의 힘이 너무나도 월등하기에 생기는 자유. ’
‘ 즉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자유를 얻었다. ’
‘ 저는 자유라고 느낍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준비하시고 예비하신 섭리(선하신 인도하심)라고 말씀하시겠지요. 어쨌든 그 섭리 속에 저를 포함시켜 주심이 어찌나 고맙고 감사한지...’
‘주 안에서 “자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느껴봅니다. ’
‘ 제가 무엇이기에 친히 능력을 보이시고, 경험하게 하셔서, 저에게 당신을 설명하시는지요. 차마 제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가 무엇이기에... ’
‘ 벅찬 가슴을 진정시킬 방법이 없다. 집회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의 버스 안에서 혼자서 낮게 읊조리는 찬양 속에서도 주님 주신 깊은 사랑이 느껴져 절로 눈물이 난다. ’
‘ 참 진득하지 못하고 방정맞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흐르는 눈물을... 찬양 가사 하나 하나에 이렇듯 마음이 요동치니... 마음이 조금 무뎌져야 끝까지 찬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가사가 가슴을 쳐 주의 음성으로 들리니, 마디마다 감동으로 눈시울이 붉어지고 이내 눈물이 되고 만다. 지나치게 격정적이겠으나, 어쩌겠는가 주의 사랑이 느껴지는 것을... ’
‘ 하나님께 계획하신 일들이니, 내가 그리고 우리가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는 쉽게 가늠할 수 없으나, 또한 나중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몇 가지 들려오는 소식과 매 집회 때 마다 느끼는 성도들의 변화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쓰시는지, 그리고 쓰셨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조그만 거울과 같다. ’
‘ 도구된 우리를 어떻게 쓰시는지를 알 수 있다. 도구된 우리가 주의 뜻을 다 알 수 없으나, 되어진 일들을 더듬어 가며 주인께서 도구인, 나 , 우리를 이용해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놀라고 감탄하는 일도 도구들의 몫임에 틀림이 없다.’
여기까지가 그날 무작위로 써내려간 감상의 글들이다. 굵직한 파편처럼 강한 느낌으로만 남은 것들이어서 어디서 어떻게 이어야 할 지 몰라 그저 그냥 그대로 옮겨보았다. 지금 그 파편들만 보아도 당시 집회에 임하셨던 주의 임재의 감격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되새겨 볼 수 있다. 다시 당시의 상황으로 들어가 본다.
오늘 마지막 집회는 음....
내 평생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 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해 얼마나 아름답고 조화롭고 감동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시는지...
참으로 답답한 것은, 느끼고 체험하고 본 광경을 말로 다 표현하려니, 내 안의 ‘말’이라는 것이 이렇게 빈곤할 수가 없다. (늘 그렇다. 지금도 역시나 그렇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집회이다. 이 집회가 만들어진 뒷이야기도 참 재미있다. 다 전하기는 곤란하고... 어찌되었든 묘한 방법으로 이곳 교회에 연락이 되어서 집회를 갖게 되었다.(뒷 이야기를 다 전하려면 또 많은 지면을 할애해야 하며-물론 이 과정에서도 주의 예비하심이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그 오묘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자면 중요이야기가 바뀔 수 있을 것 같아서 생략하기로 한다.)
집회 시간은 오후 1시로 예정되어 있지만, 우리가 11시경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몇 시간전부터 와서 준비하고 있는 성도들을 보고 혹시 우리가 늦게 도착한 것은 아닌지, 아님 바로 집회를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잠시 고민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몇시간 전에 도착해서 예배를 준비하고 있다니... 게다가 이곳은 시골마을이라서 교통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모인 성도들도 이 교회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오신 분들이다. 또한 화요일은 예배나 기타 모임이 전혀 없는 날인데 그저 사모한 마음 하나로 모여 있는 분들이다.
집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감동이다. 이토록 간절할까...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도 움직이시나... 당신께서 원하시는 영혼들에게 이렇게 해서라도 꼴을 먹이시나...
야구선수: 확신을 가지지 못하던, 스스로의 마음을 에바다와 그곳 성도들을 빌어 확신을 가지도록 만들어주신 나의, 우리의 하나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그날의 감동과감동,또 전률을 생각하게 상기시켜 준 훌륭한 글이었습니다. -[10/2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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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다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