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중국 선교 아홉 번째 이야기(3분 안에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
페이지 정보

본문
00교회에서의 첫 집회 (2004년 9월 26일)
중국 교회에서 갖는 첫 집회이다. 단원들이 집회를 준비하는 기민한 움직임은 흡사 잘 달련된 군 특수부대를 방불케 한다. 하긴 (영적)전쟁은 전쟁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긴장되고 조금은 기대되고 조금은 걱정되고... 중국어로 외운 가사는 실수 없이 잘 부를 수 있을지, 설치할 기자재들은 아무이상 없이 잘 작동될지, 우리가 만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걱정과 긴장과 기대가 오가던 중 이내 마음이 평안해 진다. 그저 맡기면 알아서 하시겠지...
오늘이 목단 교회를 헌당하지 1년이 되는 날 이라고 한다. 사람으로 치면 돌잔치인 셈이다. 이 어렵고 험한 곳에서 이렇게 좋은 교회를 세우다니... 그간 고생이 어떠했을 지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정말 돌찬치 할 맛 나겠다.
아침예배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우린 분주히 움직였다. 웃도 단복으로 갈아입고, 가져온 기자재도 나르고, 설치도 하고... 정말 집회를 하기는 하나보다. 우리가 가져온 기자재를 나르는 수단이 퍽 인상적이었는데, 지난번 북경에 방문했을 때 사진으로만 찍어 두었던 인력거를 이용했다. 직접 타보게 된 것이다. 서서히 움직이면서 이동하는 인력거 속에서는 중국의 거리가 느린 슬라이드를 돌리듯 여유롭게 눈앞을 스쳐간다. 어렸을 적 리어카를 탄 기분이다.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 곁에서 사라진 인력거... 교통수단이 꼭 빠른 것만이 매력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천천히 움직이니 이곳 중국이 보인다.
짐 실은 인력거가 교회 앞에 도착하니, 그곳 전도사님이 따뜻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신다. 처음에는 이곳의 한 집사님이신 줄 알고, “집사님이신가요?” 하고 여쭈어 보았더니, “부끄럽습니다. 이곳을 담당하고 있는 전도사입니다.” 이 지역은 교회를 담당하시는 많은 분들이 여자 분들이신 것 같다. 이후에 방문하는 여러 교회에서도 여 전도사님들이 목회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여하튼, 어찌나 반갑던지...
이곳 교회의 첫 인상은 ‘순수함’이다. 마음의 중심이 느껴지는 순수함 말이다. 북반구에 위치한 이곳 목단강은 햇빛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의 피부가 대체적으로 검게 그을려 있고, 피부 관리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시지 않는 모양인지, 그을린 피부가 많이 갈라져 있다. 연세드신 분들은 우리나라 분들 보다 주름도 많으시고... 기미도 많으시고... 음... 또... 잘 씻지 않으셔서 냄새도 조금 나며, 복장이 그다지 깔끔하지 못하다. ‘우중충’한 느낌이 난다. 하지만... 조금 지나고 나니 이러한 겉모습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질그릇 속에 품은 보화’라고나 할까... 그 분들 마음속에는 오로지 ‘예수’로만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주고받는 눈빛, 맞잡은 손, 부르는 찬양... 어느 것 하나 꾸밈이 없고, 군더더기가 없다. 알맹이가 가득 찬 사람들이다. 아니 알맹이들로 만 이루어 진 사람들 같다. 이런 사람들 앞에 껍데기만 두꺼운 내가 서 있으려니, 이들보다 말끔한 내 겉모습이 오히려 빛을 잃는다. 그리고 부끄럽기까지 하다.
예배가 시작되었다. 중간에 이곳 성가대가 찬양을 했는데, 지휘, 반주, 음정, 박자, 음색 모두 우리의 것들에 많이 못 미치지만, 그들의 담겨져 있는 마음이 전해져 온다. 그들의 진심어린 눈빛들은 그들이 찬양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얼마나 간절히 마음을 담아내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이렇게 어설픈 음악으로 된 찬양을 들으면서도 이렇게 감동하기는 처음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동안 목사님께서는 따거가 목회하고 있는 가정교회(지하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가 찬양을 시작할 즈음 다시 오셨는데, 목사님의 얼굴은 이미 감동으로 젖어 있으셨다. 따거 교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젠 말 안 해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실재 이야기는 따거와 따제의 입을 통해 나중에 전해 듣게 되는데, 말씀의 은혜가 폭풍처럼 이미 그곳을 훑고 지나갔다고 한다. 특히 그 무뚝뚝하고 말씀 없으신 따제의 반응이 대단했는데, 그것만 보아도, 이들이 얼마나 복음에 목말라 하고 있었는지,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예배의 말씀이 얼마나 큰 깨달음과 은혜와 감동이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따제 왈, “어떻게 그렇게 설명이 되지요. 호 호 호(아줌마 특유의 몸동작으로-두 손으로 박수를 쳐가며, 잘 웃지 않던 얼굴에 환한 빛을 띠며)...”
따거 왈, “우리 전도사님들 거기 가서 훈련 받아야겠다...”
목사님께서 도착할 즈음에 이곳 성가대의 찬양이 끝났고, 몇 가지 순서에 이어서 우리 찬양단의 집회가 시작되었다. 성도들이나 우리나 모두 긴장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강단에서 외국인이 설교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래서 목사님께서는 강단에 서지 않으셨다.(원래 목사님은 한국에서도 집회할 때는 강단에서 하시는 법이 없다. 늘 무선 마이크를 드시고...) 그리고 시간의 제약을 받으셨는데, 바로 문제의 시간 3분이다. 이 3분은 말씀을 전할 용도로 정해져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저 나중에 문제가 되면 ‘외국에서 온 사람이 인사가 길어져서 걸린 시간’, 즉 ’인사‘를 핑계 삼아서 말씀을 전할 시간인 것이다. 우리가 이런 곳에 와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주의 역사는 이루어지고 마는 법. 목사님께서는 당신의 설교를 3분 단위로 나누셨고, 중간에 찬양을 섞어서 연속된 3분들을 만드셨다.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3분의 신화라고나 해야 하나. 현장에 있어본 사람만이 그 오묘하고도 짜릿한 주의 섭리를 알 수 있다. 지금 드는 생각으로는, 3분이 아니라 30초라는 시간이 주어졌어도, 주께서 그 시간을 이용하셔서 주의 생명을 전하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어느 것 하나 예정되어 있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무엇하나 예정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면 과연 가능한 일들인가...
3분 안에 터지는 시한폭탄처럼, 짧은 길이의 말씀이 이들의 마음속에 순식간에 번져갔다. 어떻게 아냐고? 그곳에 서 있어 보면 그냥 안다. 3분의 말씀 가운데, 우리의 버벅거리는 중국어 찬양이 이야기 거리가 되어 말씀이 시작 되었다.
“한국에서 이 가사를 준비하고 외우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때요, 알아 들으실만 하신가요? 조금 이상하지요? 이 가사의 뜻을 정확히 알고 부를 수가 없어서 중국말을 한국말로 소리 나는 대로 고쳐서 외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딘가 조금 어색하게 들리실 것입니다. 정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가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읽기는 많이 읽어도 정확하게 보지 못할 때가 많이 있죠....”
뒤에서 이 말씀을 듣는데, 몸에서 소름이 돋는다. ‘야~~~’ 주의 인도하심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인도하시는 구나.
우리 단원들은, 목사님의 메시지가 어떻게 전개되어서 어떻게 마무리 되는 지를 많은 집회가운데 들어 왔기 때문에 잘 안다. 그 결론은 마치 깔때기처럼, 나중에는 항상 같은 것(생기를 회복하는 일, 마음으로 영접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 하나님을 인격으로 만나는 일, 기름을 준비하는 일 등...)을 끝이 나는데, 이는 생명을 전하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중국 집회 내내, 물론 결론은 같았지만, 그 말씀의 전개가 사뭇 달랐다. 달랐다기 보다는 늘 (우리가)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번 집회 내내 난 주께서 목사님의 입을 어떻게 사용하시는지 유심히 보았는데(유심히 보았다기보다는 혼자 걱정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어떨 때는 뒤에서 말씀을 들을 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니 오늘 목사님 말씀이 너무 이상하잖아. 전개도 평소와 같지 않고... 아니 말씀을 어떻게 맺으시려고 저러시나...’
‘하나님 도데체 어쩌시려구요.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가요. 말씀을 어떻게 마무리 하시려고...’
역시 난 믿음이 부족한가 보다. 매 설교 때 마다 참 신기한 일들이 일어난다. 시작은 어떻게 하셨는지 몰라도, 내 걱정과 상관없이, 목사님께서 설교하실 때 마다, 상황마다, 가장 적절하고, 가장 알맞은 말씀으로 인도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지혜로... “적재적소”라는 말은 이럴 때 어울리는 말이다. 목사님의 말씀 부분을 부각시켜서 주께서 인도하시는 당시의 정황을 잘 설명하고 싶지만, 기억력과 언어 구사의 빈곤함이 그저 한스럽기만 하다. 주께서 이미 목사님의 입술을 주장하고 계시고 있었다. 선교는 정말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종범: 글을 참 잘 쓰시네여..저도 좀전에 집회후기 다쓰고 날렸답니다.ㅎㅎㅎ허탈과 함께 이글을 읽어보니 다시 새록새록 은혜의 시간이 생각이나는군요 다시한번 쓰렵니닼ㅋ -[10/04-17:30]-
nanhee: 긴장감을 느낍니다...많은 긴장 속에서 더더욱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셨겠군요....감사하네요. -[10/04-18:3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에바다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