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나니와 상인의 노루마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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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부터 오사카 지방을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 일대를 상인의 도시라고 하였다. 장사를 배우려면 나니와(오사카의 순수한 옛말)로 가고, 정치를 배우려면 에또(동경의 옛말)로 가라고 하였다 한다. 그만큼 오사카란 동네는 장삿꾼(장똘뱅이)의 마을로 유명하였다. 그런데 그 장사를 잘 하는 비결이 무언가 하였더니, 바로 노루마 라고 하는 제도였다. 노루마란, 노루가 마포에 나타났다고 하여 지어진 말이 아니고, 목표달성을 부추기게 하기 위한 하나의 미끼를 거는 것, 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 싶다. 다시말해, 항상 달성된 목표의 다음 목표를 설정해 놓고 그 목표를 달성한 경우엔 후한 보너스와 인센티브를 통하여 동기를 부여 시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말 표현은 쉽지만 대단히 어려운 시스템이기도 하다.
채찍과 당근의 조화라고 도 할까? 지금도 영업을 하는 모든 셀러리맨들은 이런 노루마 제도를 적용 받고 있는 일종의 혹독한 연봉 제도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 때문에, 밤낮으로 가리지 않고 물건을 팔러 다닌다는 것이다. 빠른 시간내에 노루마로 정해진 량을 많이 파는 사람이야 말로 말이 필요 없는 그야말로 장땡인 것이다. 그래서 장사성의 마인드 전환은 나니와 사람을 따라갈 경쟁자가 없다고도 한다.
그런데,이러한 노루마 제도를 자신의 생활 일부분으로 기쁘게 즐기면서 장사를 잘하는 사람들의 조직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면 몇가지 들 수 있다.
첫째는 그 사람들은 무진장 원기왕성하다는 것이다. (일본어표현으로 겡끼하다고 한다. 겡끼란 우리말로??? 원기라는 한자어 표현이다. 앗! 이때 엘토의 경아씨가 깔때기를 들고 와서 살며시 답을 얘기 했으나, 틀렸습니다. 공부하세요!!!.) 원기왕성하다는 의미는 그만큼 서로가 활발하게 대화하면서 장사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로의 의사소통 즉 눈빛만 봐도 언제 어디로 장사하러 가는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둘째, 그들은 자기관리를 살벌하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기관리란, 건강부터 시작하여 시간관리를 통틀어서 일컫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사람은 24시간도 모자란다고 하는 표현을 간혹 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이 나 와는 관계 없다는 이유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이쯤에서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그 장똘뱅이들은 오후 5시만 되면 칼 같이 업무에서 손떼고 가게(사무실)를 나가고 만다 . 그 만큼 프로페셔날의 근성을 갖고 있다고 할까?
짧은 기간이었지만 일본인들만 모인 곳에서 함께 일을 해 보니, 그래도 하이 레베루에 속할 것이다 라고 한 나의 안이한 생각과 자세가 그들과 많은 격차가 있었다는 것을 지금에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그랫지만, 그때까진 왠지 늦게 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야 말로 업무를 잘 하는 사람, 일을 최고로 잘 하는 사람으로 알 고 있었지만 사실은 목표달성과는 거리가 좀 먼 이야기 였던 것 같았다. 그들은 목표달성을 위하여 시간관리를 하고 있었지만 나 자신은 나를 표현하기 위하여 시간관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제일로 어눌하고 바보같은 생각이었다고 새삼 뒤돌아 보곤 한다. 특히 여직원들은 5시에서 최고 2,3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탈의실에서 옷 갈아 입고 칼같이 곧바로 퇴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고 집으로 가는 것이다. 헌데 그것도 한 1,2년 흐르다 보니 저절로 익속해 져 버린 탓에 극히 자연스런 모습으로 보여지게 되었다. (처음엔 미친X들 월급 꼬박꼬박 받고 너무 야속한거 아냐 이거 ! 하면서 영웅심을 표현하기도,,,)
먼 발치에서 최근의 에바다를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첫사랑의 달콤함이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서 거의 사라진 것 같은 느낌. 아마추어 라곤 하지만 예수 쟁이의 프로근성이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램. 노루마라고 하는 목표점이 안개에 가리워져 있는 느낌,,,, 이전 처럼 홈피에 수다라도 왕성하게 떨다가 나가는 그런 분위기가 사라진 점,,,, 모처럼 무방위 위원회가 발족되어 올커니 하였지만 모두들 젠틀한 분위기,,,
장똘뱅이들은 끊임없이 노루마를 달성하기 위하여 연구하고 머리를 부딛치며 달려 가고 있는 것과 비하여 오히려 예수 믿는 우리들이 그보다 더 갑절로 왕성한 활동성을 보여 주질 못한다면 하는 푸념도 해 본다. 정기적이고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한번 어깨너머로 배웠던 성경공부를 해 보면 해 볼 수록, 말씀이 요구하고 있는 참 믿음을 지키고 성숙해 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것인지 이제야 쥐꼬리만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허지만 그도 그럴것이 우리의 육감이 살아 있고, 잘 보이는 두 눈이 번뜩이고 있으며, 세상으로의 귀가 활짝 열려 있는 지금의 시대에 고리타분한 말씀과 찬양은 사실상 이벤트성의 소화불량으로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 솔직한 심경이다. 그래도 말씀을 대하는 태도와 들여다 보는 방법만이라도 바뀔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얼마난 행복한지 그냥 쨩! 이라고 할 수 있다.(여기서 쨩이란 표현은 가장 친근하고 가까운 사람을 들어서 이름의 마지막에 붙이는 칭어이나 우리나라에서 이상하게 사용되기 시작하여 일반적으로 최고의 느낌이라는 감탄사 표현으로 이해 바람.)
사춘기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은지와 수범, 키가 훤뜩이 큰 탓에 (169) 이젠 눈 높이도 맞짱을 뜨면서 쳐다봐야 하는 초 슈퍼 반항적인 태도와 행동이 돌발 할 때마다, 분위기를 수습할 수 있도록번뜩이는 지혜를 달라고 절규하면서 이 쯤에서 저들을(은지 수범) 두둘겨 방망이질 하게 된다면, 나 자신은 물론 우리 가족 모두가 괴멸상태로 사단의 유혹에 지고 만다고 하는 처절한 되새김질과 함께, 죽어도 나를 죽여야 하느니라,,,,누구야 -아!-? 나를 죽이라고 한 사람이 누구야 아- ,,,, 은지야 수범아 아빠가 싫어진거야? 우리 엔조이 한거야 ? 우리 이제 맞쨩드는 거야? 하면서 오야지(아버지) 개그로 대신 연발해야만 하는 이 심정을 하나님은 알고 계시겠지.
특히 찬양은 환경이 좋은 곳에서 항상, 늘 하고 있으니까, 아니면 나름대로 한가닥하고 있다라고 하는 생각이 무의식중 지배하고 있다는 것에서, 습관성 행동발달과 뇌파의 파장에 의하여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이라는 것을 간혹 잊어 버릴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허나, 어떻게 생각해 보면 찬양이 배고프고 말씀이 배고플 정도로 부족한 곳에서 한번쯤 일정기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은 발상의 전환, 분위기 전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에바다도 원기왕성한 노루마 정신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다음번 우리 만나면 북적이는 곳에서 피자 한판 놓고 실컷 수다나 떨어 봅시다.(목사님 빼고!) ㅋㅋㅋㅋ,, 사요나라,, 연휴 후유증에 갈팡질팡 혼수상태속에서,,, 여러분 사랑합니다. !!!
soon: 좋은글에 감사 합니다...노루마!! ...^^ 요즘들어 우리부부는 너무 쉽게 언제 어디서건 찬양할수있어서 나태해진 모습을 보이더군요...조금더 우리 자신에게 채찍을 가해서 영적으로 성숙할수있길 기도합니다...우린 당근만 너무 많이 먹는거 같아요...채찍은 없이... -[05/09-15:22]-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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