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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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람들이 흔히들 대화중에 자주 오르내리는 문구중에는 [계속은 힘]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을 듣고 머리속에 남겨 되새기고 있노라면 몇가지 대조되는 것들이 떠오르곤 하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행사나 주최되는 이벤트등과 관련된 것들 인데, 바로 이런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 특히 서울이나 근교의 어느 구석을 가도 자주 늘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사방이 확 트인 사거리 혹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커다란 대로변이라든지 그런 스페이스의 한 귀퉁이를 가로로 장식하고 있는 프랭카드 군이라 할 수 있다. 자세히 하나씩 읽어 보면 장사를 위한 광고문구도 여럿이 있긴 하지만, 무슨 대회 무슨 모임,,,,제1회 0000대회,,,제1회000 모임,등의 문구가 많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상당수가 제1회 라는 데 유심히 흥미를 갖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제1회 주최되었던 것들이 올해는 찾을 수 없는 것들로 전락되어 진다거나, 아는 듯 모르는듯 어느샌가 그 흔적 조차 없어지고 마는 그런 모임 그런 행사는 힘이 될 수 없음이 명확할 것이다.
서두에 제시한 계속이란 의미는 단순한 계속이라는 뜻이라기 보다, 취지는 공통되면서도 정기적으로 그리고 다음번엔 버젼이 업그레이드 되는 개선된 내용으로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필연 조건이 내포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우리 성경공부는 필요충분 조건을 넉넉하게 갖춘 아주 귀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열일곱번째의 성경공부가 공고되었다.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 계속은 힘이란 말을 위안 삼아 열심히 응원해 주고픈 마음이다.
최근에 묵상하고 있는 말씀이, 여호수와서와 그리고 사무엘상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그야말로 스토리가 영화의 흐름처럼 선명하게도 남아 머릿속을 두두리고 있다는 의식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수수께끼 같은 것중 하나는, 그 읽고 지나간 많은 스토리들 중에서 하나같이 공통되는 것이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경외하거나 섬길 경우에 내려치는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와 진멸이 그토록 이스라엘 백성과 유대백성들에게 선명하게도 나타난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죄를 반복하고 거듭하고 있는 모습을 볼때, 참으로 갑깝한 마음으로 옛날얘기? 하며 남의 애기인양 지나치면서도 한편, 내심 심각하게 자신을 돌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여호와 하나님 이외 다른 신, 혹은 그 마음속에 여호와 이외 다른 것들을 두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일까? 도저히 불가능한 것일까?
여호와 께서 싫다시는데 왜 그토록 금방 맴이 바뀌고 마는 것일까? 믿음이 없어서?
율법을 못 지키니까?
어렵기는 진짜 어려운 모양이다. 달리 생각해 보면 계명의 첫번째 되는 항목인데 사실상 지키기가 이토록 힘들고 어려운 것인데 나머지 계명이랴 애시당초 지킬 생각도 못하는 것 아닌가? 솔직한 고백으로서,,,
여호수와11장13,14절 -> 가나안 북방의 모든 성읍들을 차지하는 가운데 [모든 재물들과 가축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하고 모든 사람은 칼날로 쳐서 멸하여 흐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하면서 여호와께서 여호수와에게 명령하시고 약속하신 것들을 실행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22절에 가면 여호수와가 이같이 온땅 산지 모두를 차지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 하며 약간의 여호와하고 약속하고 지시받은 것 외에 몇가지를 남겨 두었다는 사실이 등장한다. 이 연유로 말미암아 , 나중, 사사기 그리고 사무엘서로 가게 되니까 엄청난 결과로 상황이 반전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화로도 유명한 삼손과 들릴라 스토리에서 등장하는 기생이 바로 가사 출신이었다는 것에서 약간이라도 남겨둔 그 가사와 가드 아스돗이 결국은 화근이 되어 결국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사실. 블레셋 군대도 그러하여 , 여호와의 언약궤를 탈취당하는 굴욕을 겪고 마는 것, 용맹한 다위과 싸운 블레셋의 골리앗도 그러하였다. (삼상17;4 이하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있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규빗 한뼘이요,,,,)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진리와 내 마음속에서 여호와 이외 다른 것들을 빼 내 줏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성실하심, 그리고 자상하심이 이토록 절실한 상황까지 내어 몰아치면서 사랑하고 아끼고 계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기를 더디하니 눈물 날 지경이 아닐 수 없다.
계속은 힘이 된다. 일본 열도에서 1억3천만되는 인구중, 선택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지금껏 맛보지 못했던 말씀의 오묘한 진리를 겨우 이제 눈꺼플을 들어 올리면서 강아지 눈 뜨듯 보게 되었건만 그 반복 공부 간격(계속이란 힘) 이 너무도 길기만 하다는 그야말로 인간적이고 인본적인 상황 핑계로 인하여 자꾸만 말씀으로 보터 멀어지려는 백성으로 될 수 밖에 없슴이 안타깝기만 하다.
계속은 힘이 된다.
며칠전 부부싸움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참 기가막히고 황당하기만 할 따름이다. 네번에 걸쳐 제시된 숙제를 하려고 심각하게 책상에 걸터 앉은 순간, 느닷없이 마누라입에서 나온 말 왈 " 왜 혼자만 잘난체 하면서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래서 그럼 같이 앚아서 하자고 친절하게 (진짜 친절하게 하였슴 믿어 주길 바람) 권면하였으나 또 다시 돌아 오는 말 왈, "나도 하려던 참이었는데 다른 할게 많아야 차일피일 미루고 있지 않았느냐? 그게 잘 되지 않아서 그렇다" 하며 울먹이며 하소연한 것이었다. 무엇이 이런 마음을 갖게 하였을까? 하며,,,,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전에 느닷없이 화가 치밀었다. " 그게 무슨 이유가 되냐 하면서 그냥 앉아서 하면 하고 못하면 다음에 하겠다 하면 되지" 하며 되받아 친 후, 갑자기 싸늘하고도 냉냉한 분위기로 돌변하고 말았다. 도데체 성경말씀을 보려고 하는데 왜 이런 상황으로 반전되야만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도무지 이해가 안되고 답답한 심정으로 며칠이 그냥 묵묵히 흘려가고 말았다.
계속은 힘이 된다고 하엿건만, 계속 하질 못하니까 마음을 빼앗겨 버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고전하고 ,,고통이 되고, 갈등하며 ,,,, 그리고 기뻐하고 자유함을 차지하고,,,,또 다시 갈등하고 고뇌하며 괴로운 시간이 찾아 오고,,, 고뇌하며 다시 기뻐하고 그리고 자유로움을 얻고,,,,,,,
그게 계속 반복되는 것 같다.
부부싸움을 하는 한이 있어라도 말씀공부는 계속 되어야 한다.
싸운이후 며칠을 곰곰히 궁리하였으나 뾰족한 방법이 달리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인생 살이 정답을 확실히 알고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이 따라 주지 못하는 괴로운 심정.
마음속 한 주인을 섬기는 것이야 말로 정말 힘들고 어려운 길임에 분명한 것 같다.
열일곱번째 이후 계속은 힘이 됩니다.
그것은 어떤 행사나 주최되는 이벤트등과 관련된 것들 인데, 바로 이런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 특히 서울이나 근교의 어느 구석을 가도 자주 늘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사방이 확 트인 사거리 혹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커다란 대로변이라든지 그런 스페이스의 한 귀퉁이를 가로로 장식하고 있는 프랭카드 군이라 할 수 있다. 자세히 하나씩 읽어 보면 장사를 위한 광고문구도 여럿이 있긴 하지만, 무슨 대회 무슨 모임,,,,제1회 0000대회,,,제1회000 모임,등의 문구가 많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상당수가 제1회 라는 데 유심히 흥미를 갖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제1회 주최되었던 것들이 올해는 찾을 수 없는 것들로 전락되어 진다거나, 아는 듯 모르는듯 어느샌가 그 흔적 조차 없어지고 마는 그런 모임 그런 행사는 힘이 될 수 없음이 명확할 것이다.
서두에 제시한 계속이란 의미는 단순한 계속이라는 뜻이라기 보다, 취지는 공통되면서도 정기적으로 그리고 다음번엔 버젼이 업그레이드 되는 개선된 내용으로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필연 조건이 내포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우리 성경공부는 필요충분 조건을 넉넉하게 갖춘 아주 귀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열일곱번째의 성경공부가 공고되었다.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 계속은 힘이란 말을 위안 삼아 열심히 응원해 주고픈 마음이다.
최근에 묵상하고 있는 말씀이, 여호수와서와 그리고 사무엘상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그야말로 스토리가 영화의 흐름처럼 선명하게도 남아 머릿속을 두두리고 있다는 의식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수수께끼 같은 것중 하나는, 그 읽고 지나간 많은 스토리들 중에서 하나같이 공통되는 것이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경외하거나 섬길 경우에 내려치는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와 진멸이 그토록 이스라엘 백성과 유대백성들에게 선명하게도 나타난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죄를 반복하고 거듭하고 있는 모습을 볼때, 참으로 갑깝한 마음으로 옛날얘기? 하며 남의 애기인양 지나치면서도 한편, 내심 심각하게 자신을 돌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여호와 하나님 이외 다른 신, 혹은 그 마음속에 여호와 이외 다른 것들을 두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일까? 도저히 불가능한 것일까?
여호와 께서 싫다시는데 왜 그토록 금방 맴이 바뀌고 마는 것일까? 믿음이 없어서?
율법을 못 지키니까?
어렵기는 진짜 어려운 모양이다. 달리 생각해 보면 계명의 첫번째 되는 항목인데 사실상 지키기가 이토록 힘들고 어려운 것인데 나머지 계명이랴 애시당초 지킬 생각도 못하는 것 아닌가? 솔직한 고백으로서,,,
여호수와11장13,14절 -> 가나안 북방의 모든 성읍들을 차지하는 가운데 [모든 재물들과 가축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하고 모든 사람은 칼날로 쳐서 멸하여 흐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하면서 여호와께서 여호수와에게 명령하시고 약속하신 것들을 실행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22절에 가면 여호수와가 이같이 온땅 산지 모두를 차지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 하며 약간의 여호와하고 약속하고 지시받은 것 외에 몇가지를 남겨 두었다는 사실이 등장한다. 이 연유로 말미암아 , 나중, 사사기 그리고 사무엘서로 가게 되니까 엄청난 결과로 상황이 반전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화로도 유명한 삼손과 들릴라 스토리에서 등장하는 기생이 바로 가사 출신이었다는 것에서 약간이라도 남겨둔 그 가사와 가드 아스돗이 결국은 화근이 되어 결국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사실. 블레셋 군대도 그러하여 , 여호와의 언약궤를 탈취당하는 굴욕을 겪고 마는 것, 용맹한 다위과 싸운 블레셋의 골리앗도 그러하였다. (삼상17;4 이하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있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규빗 한뼘이요,,,,)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진리와 내 마음속에서 여호와 이외 다른 것들을 빼 내 줏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성실하심, 그리고 자상하심이 이토록 절실한 상황까지 내어 몰아치면서 사랑하고 아끼고 계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기를 더디하니 눈물 날 지경이 아닐 수 없다.
계속은 힘이 된다. 일본 열도에서 1억3천만되는 인구중, 선택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지금껏 맛보지 못했던 말씀의 오묘한 진리를 겨우 이제 눈꺼플을 들어 올리면서 강아지 눈 뜨듯 보게 되었건만 그 반복 공부 간격(계속이란 힘) 이 너무도 길기만 하다는 그야말로 인간적이고 인본적인 상황 핑계로 인하여 자꾸만 말씀으로 보터 멀어지려는 백성으로 될 수 밖에 없슴이 안타깝기만 하다.
계속은 힘이 된다.
며칠전 부부싸움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참 기가막히고 황당하기만 할 따름이다. 네번에 걸쳐 제시된 숙제를 하려고 심각하게 책상에 걸터 앉은 순간, 느닷없이 마누라입에서 나온 말 왈 " 왜 혼자만 잘난체 하면서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래서 그럼 같이 앚아서 하자고 친절하게 (진짜 친절하게 하였슴 믿어 주길 바람) 권면하였으나 또 다시 돌아 오는 말 왈, "나도 하려던 참이었는데 다른 할게 많아야 차일피일 미루고 있지 않았느냐? 그게 잘 되지 않아서 그렇다" 하며 울먹이며 하소연한 것이었다. 무엇이 이런 마음을 갖게 하였을까? 하며,,,,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전에 느닷없이 화가 치밀었다. " 그게 무슨 이유가 되냐 하면서 그냥 앉아서 하면 하고 못하면 다음에 하겠다 하면 되지" 하며 되받아 친 후, 갑자기 싸늘하고도 냉냉한 분위기로 돌변하고 말았다. 도데체 성경말씀을 보려고 하는데 왜 이런 상황으로 반전되야만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도무지 이해가 안되고 답답한 심정으로 며칠이 그냥 묵묵히 흘려가고 말았다.
계속은 힘이 된다고 하엿건만, 계속 하질 못하니까 마음을 빼앗겨 버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고전하고 ,,고통이 되고, 갈등하며 ,,,, 그리고 기뻐하고 자유함을 차지하고,,,,또 다시 갈등하고 고뇌하며 괴로운 시간이 찾아 오고,,, 고뇌하며 다시 기뻐하고 그리고 자유로움을 얻고,,,,,,,
그게 계속 반복되는 것 같다.
부부싸움을 하는 한이 있어라도 말씀공부는 계속 되어야 한다.
싸운이후 며칠을 곰곰히 궁리하였으나 뾰족한 방법이 달리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인생 살이 정답을 확실히 알고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이 따라 주지 못하는 괴로운 심정.
마음속 한 주인을 섬기는 것이야 말로 정말 힘들고 어려운 길임에 분명한 것 같다.
열일곱번째 이후 계속은 힘이 됩니다.
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기무 집사님의 글이 힘이 됩니다. 일본에서도 성경공부는 계속 힘이 됩니다. fighting!!!!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어디 성령의 망치 없을까요?
한대만 맞으면 부셔지든지 아니면 하나님속으로 콕!! 하고 박히는 그런 망치요~
이놈에 아가지?를 부실만한 큰놈으로 부탁합니다~
구하기 전까지는 성경말씀으로~^^
계속 올려주신 글이 힘이 됩니다


성경공부 

